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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수용소에 담긴 인생의 의미
우리는 모두 열심히 삽니다. 그런데 열심히 살수록 인생이 참 힘들다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열심히 해도 인생이 달라질 것 같지 않고, 나만 빼고 다른 사람들은 다 행복해 보이고, 내가 사랑받을 만한 존재인지, 인생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 수 없을 때가 많습니다. 우울, 무기력, PTSD 같은 정신 건강 관련 단어를 접하기가 너무 쉬워졌습니다. 온 사회의 정신 건강에 관한 이야기들이 퍼지는 것을 보니 나만 힘든 건 아니구나 싶다가도 현실의 무게에 금세 다시 억눌리곤 합니다. 그런데 객관적으로 최악인 상황에서도 정신 건강을 지키고 나아가 타인을 돌보고 베푸는 등 의미 있는 삶을 살아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최악의 상황이라는 게 뭔데 싶을 수 있습니다. 못 먹고 못 자고 구타당하고 강제 노역을 하고, 매일 동료들이 죽어나가고, 자기 자신도 언제 죽을지 모르는 아우슈비츠 수용소 수감자라면 최악이라 부르기 부족함 없지 않을까요? 이런 최악의 상황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심지어 한 조각뿐인 빵을 동료에게 나누며 타인을 돌보기까지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어떻게 정신 건강과 존엄성을 지킬 수 있었을까요? 그리고 최악의 상황 속에서도 어떻게 희망을 잃지 않고 고통을 견뎌낼 수 있었을까요? 아우슈비츠 생환자이자 심리학자, 정신과 의사인 빅터 프랭클 박사가 그의 저서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통해 그 비밀을 밝힙니다. 죽음의 수용소에 담긴 인생의 의미를 찾는 법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인생은 의미를 찾는 여행이다.
인생이란 무엇인가요? 너무 추상적 질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모습을 보면 개인이 인생을 어떻게 정의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누군가는 인생을 권력 축으로 정의합니다. 더 큰돈, 지위, 사회적 인정을 얻기 위해 살아갑니다. 또 다른 이들에게 인생은 행복 추구입니다. 나를 즐겁게 해주는 물건, 사람, 대상 등을 찾아 끝없이 갑니다. 빅터 프랭클 박사가 정의하는 인생은 의미 탐구입니다. 인간은 본능에 따라먹고 번식하고 즐기기만 하는 동물이 아닙니다. 끊임없이 인생의 의미를 찾아 방황하고 세상에 의미 있는 흔적을 남기기 위해 노력하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인생의 의미가 대체 뭔데'라고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저도 모릅니다. 빅터 프랭클 박사도 모르고 세상 그 어떤 사람도 답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마다 다릅니다. 프랭클 박사는 인생의 의미란 사람마다 그리고 때에 따라 다르다 말합니다. 저 사람과 나의 의미가 다르고, 10년 전 나와 지금의 나의 의미가 다릅니다. 그러니 우리는 특정 잣대로 인생의 유의미함을 저울질해서는 안 됩니다. 지금 여기 나에게 의미 있는 일이 무엇인지 찾아야 합니다. 인생은 의미를 찾는 여행입니다. 죽음의 수용소에 담긴 정신 건강 비밀이 바로 이겁니다. 인생의 의미를 발견한 사람들은 그 어떤 역경 속에서도 희망을 놓지 않았고 정신적으로 건강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반면 의미를 상실한 이들은 금세 몸도 마음도 무너져 내립니다. 니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견딜 수 있다. 그러니 인생의 의미 목적을 가져야 정신적으로 건강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의미를 찾아 그러면 해결되라고만 말하는 건 하나마나한 조언입니다. 그래서 프랭클 박사는 의미 발견을 통해 정신질환을 극복하는 치료법을 제안합니다. 그 치료법이 로고세러피입니다. 의미를 뜻하는 로고스와 치료를 뜻하는 세러피의 합성어입니다. 죽음의 수용소에서 담긴 로고세러피 핵심 내용을 세 가지 키워드로 소개해 보겠습니다.
첫째 선택입니다.
인간에게 모든 것을 빼앗아 갈 수 있어도 단 한 가지 마지막 남은 인간의 자유, 주어진 환경에서 자신의 태도를 결정하고 자기 자신의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만은 빼앗아 갈 수 없습니다. 인간이 모든 환경과 상황을 통제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어떤 상황에서도 태도만큼은 선택할 수 있습니다. 수용소 안 포로들은 모두 같은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그 속에서 누군가는 자기 편의를 위해 나치 편에 붙어 동포들을 핍박하고 폭행하며 포로들을 관리하는 앞잡이 역할을 자처합니다. 그러나 다른 누군가는 작은 빵 한 조각도 환자들과 나누고 지친 동료들을 위로합니다. 상황이 태도를 만드는 게 아닙니다. 태도가 상황을 바꿉니다. 아우슈비츠라는 극한 상황에서도 태도만은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다면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직장 생활하면서 누군가는 돈도 많이 안 주는 직장에서 열심히 일해봤자 뭐 해라고 생각합니다. 반면 누군가는 회사가 작아서 중요한 일까지 다 해볼 수 있네 많이 배우겠다고 말합니다. 실직, 이별 등 인생 위기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군가는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 생기지라며 스스로를 우울구렁텅이로 몰아넣었음, 반면 다른 누군가는 나랑 인연이 아니었나 보지 이번 기회에 더 나은 회사 사람을 찾으면 되지라며 긍정적으로 생각합니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긍정적인 면 배울 만한 점이 존재합니다. 빅터 프랭클 박사 본인이 그 사례입니다. 많은 수용소 포로들이 그저 매일 주어지는 노역과 힘든 환경에 눌려 불평하고 희망을 잃어갔습니다. 그러나 프랭클 박사는 전쟁 후 수용소 포로들의 심리 상태에 관해 강연하는 미래를 상상하며 동료들을 관찰했습니다. 똑같은 고통 속에서 누군가는 노력을 했고, 누군가는 직업적 연구를 한 셈입니다. 이처럼 그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는 보다 나은 태도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인생의 위기를 겪고 있나요? 나를 억누르는 거대한 문제가 있나요? 그 문제를 없앨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태도는 선택할 수 있습니다. 우리를 아프게 하는 건 상황 그 자체가 아니라 상황에 대한 걱정, 내 마음입니다. 인생의 시련이 내 가족, 친구, 자유, 건강, 돈, 모든 걸 빼앗아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단 하나 태도를 선택할 자유만큼은 빼앗아갈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 마지막 남은 그 자유를 너무 쉽게 포기하고 있지 않나요?
둘째 시련입니다.
인생은 시련의 연속입니다. 그중 가장 힘든 시련은 마음의 시련, 실존적 좌절입니다. 실존적 좌절이란 의미가 결여된 상태를 뜻합니다. 삶의 의미, 살아야 할 이유를 발견하지 못한 상태를 뜻합니다. 기존 가치 체계가 빠르게 무너지고 재정립되는 현대 사회에선 이런 실존적 좌절이 우울증, 정신병 원인이 되곤 합니다. 그런데 앞서 말했듯 인생은 의미 탐색의 연속입니다. 평생 의미를 찾아야 하니 당연히 그 과정에서 실존적 좌절을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자연스러운 과정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시련에 압도되어 스스로에게 문제가 있다 생각합니다. 청소년들이 사춘기를 겪고 중년이 갱년기를 겪던 자연스러운 과정일 뿐인데, 좌절감을 극복하려 술, 담배 혹은 신경안정제에 중독되고는 합니다. 프랭클 박사는 시련은 죽음과 같이 우리 삶의 한 부분이다라고 말합니다. 실존적 좌절에서 비롯된 고통은 신경 질환 증세가 아니고 오히려 인간적 성취라고 말합니다. 그러니 우리는 시련을 문제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삶의 의미를 발견하게 해주는 기회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는 아무 걱정, 고통 없는 이상적 상황을 꿈꿉니다. 그런데 그 어떤 걱정도 고통도 없으면 우리는 과연 행복할까요? 쇼펜하우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간은 고민과 권태의 양 극단을 끊임없이 오가도록 운명 지어진 존재다.' 고민이 사라지면 권태가 찾아옵니다. 그리고 현대인들은 고민보다 권태로 인해 정신질환을 겪는 경우가 많습니다. 해결해야 할 일이 너무 많고 바쁘면 스스로의 비참함을 생각할 겨를도 없습니다. 그러나 해야 할 일도 없고 방구석에 하루 종일 박혀 있으면 우울감과 권태가 스멀스멀 우리를 집어삼킵니다. 고민이 있다는 건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다는 뜻이고, 그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인간은 성장합니다. 그런데 문제가 없으면 성장할 기회도 인생의 보람도 없습니다. 프랭클 박사는 인간에게 필요한 건 문제가 없는 상태가 아니라 목표를 위해 투쟁하는 것이라 말합니다. 평온함, 안정이 아닌 정신적 역동성이 우리를 성장시킨다고 말합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시련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살면서 만나는 많은 문제들을 그저 불행으로 치부해 버리면 매 순간 불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시련은 기본 값이고, 그 시련을 극복하는 과정이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 매 순간이 성장 기회가 됩니다. 시련을 일상적인 일, 정신적 운동으로 생각하세요. 운동하지 않고 누워만 있으면 처음에는 편합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성인병, 척추 질환, 우울감이 따라옵니다. 시련 없는 편안한 인생만 추구하며 행복을 바라는 건 운동도 안 하면서 건강을 바라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니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
셋째, 책임입니다.
인생의 의미는 사람마다 다르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수용소에서 생존한 이들 상당수가 수용소 생활을 버틸 수 있던 원동력으로 가족을 꼽았습니다. 내가 지켜야 할 배우자, 자식, 부모, 형제가 극한 상황을 버티게 해주는 힘이 됩니다. 우리 가족들에게 내 존재를 대신할 수 있는 존재는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내 존재의 중요성을 깨닫는 순간 삶에 대한 책임감을 갖게 됩니다. 이 무거운 책임감은 인생의 의미를 찾는 강력한 원동력이 됩니다. 물론 세상에는 다양한 형태의 가족, 다양한 사연들이 존재하기에 가족이 유일한 책임감의 원천일 수는 없습니다. 가족보다 더 큰 책임감의 원천은 바로 나 자신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삶에 책임감을 가짐으로써 인생의 의미를 찾을 수 있습니다. 삶은 우리에게 수많은 질문을 던집니다. 그리고 그 질문에 답하는 건 다른 누가 아닌 바로 나입니다. 크고 작은 역경과 시련을 만날 때 우리는 책임감을 가지고 그 문제를 넘어설 수도, 모른 척 회피해 버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습니다. 내 문제를 해결할 사람도 나뿐이고, 인생의 의미도 내가 발견해야 한다는 책임을 떠맡을 때 우리는 실존적 공허를 해소할 수 있습니다. 프랭클 박사는 우리가 인생에 책임감을 갖도록 돕는 구체적인 아이디어를 제시합니다. '인생을 두 번째로 살고 있는 것처럼 살아라. 그리고 지금 당신이 막 하려고 하는 행동이 첫 번째 인생에서 이미 그릇되게 했던 바로 그 행동이라고 생각하라.' '수많은 인생의 갈림길에서 지금이 두 번째 인생이라면 어떤 선택을 할까?'를 생각하면 책임감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좋은 선택, 나쁜 선택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고 있습니다. 지금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하고, 소중한 사람을 더 소중하게 대해야 하며, 게으름과 나태함보다 도전과 열정을 선택해야 한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잘못된 결정을 했을 때 어떤 결과가 따라올지도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운동하지 않고 불규칙한 생활, 과식 폭음을 반복하면 건강이 망가질 거라는 걸 아는 것처럼요. 그럼에도 우리는 순간에 귀찮은 편안함에 사로잡혀 잘못된 결정을 반복합니다. 잘못된 선택을 반복하면 어느 순간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시궁창 인생이 되어 있곤 합니다. 그런데 지금이 두 번째 인생이고 지금 내가 하려는 바로 그 결정 때문에 첫 번째 인생이 망가졌다면 어떨까요? 전혀 다른 선택을 하게 될 겁니다. 지금이 인생 2회 차라면 어떤 선택을 하시겠습니까? 인생을 두 번째 살고 있는 것처럼 삽시다. 물론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도망치지 맙시다. 두 번째 인생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우리에게 있습니다. 오늘 이 순간부터 두 번째 인생이 시작됩니다. 살아야 할 이유, 의미가 있는 사람은 그 어떤 고통도 견딜 수 있습니다. 우리가 겪는 모든 물리적, 실존적 문제들을 극복할 원동력은 의미입니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올바른 태도를 선택하세요. 문제를 바꿀 수는 없지만 태도는 전적으로 우리가 결정할 수 있습니다.
인생에 책임감을 가져라.
시련을 받아들이세요. 편안함을 추구하지 말고 정신적 역동성을 추구하세요. 인생에 책임감을 가지세요. 삶이 던지는 수많은 질문에 답할 사람은 오직 여러분 자신 뿐인 올바른 태도를 선택하고 시련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책임감을 가지면 우리는 조금씩 인생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죽음의 수용소에서 소개하는 로고세러피는 개개인에게 이렇게 저렇게 해라고 말하는 처방이 아닙니다. 앞서 소개드린 키워드들을 중심으로 각자 생각을 바꾸고 스스로 의미를 찾아 나서도록 돕는 안내서입니다. 감히 말하건대 인생에서 최소 세 번은 읽어봐야 할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구나 인생의 세 번 정도는 큰 위기를 겪기 마련이니까요. 큰 위기와 시련 속에서 마음이 흔들릴 때 이 책을 통해 마음을 다잡고 각자 인생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겠습니다.